CYCLE+SWIM 2017. 4. 19. 18:40

지친 어둠이 다시 푸른 눈 뜰때 - 2017 플래시후기 팀불나방












지친 어둠이, 다시 푸른 눈 뜰 때 - 2017 플래시 후기.

2017년 4월 15일, 팀불나방은 또다시 원주에 모여 설렁탕 한그륵과 함께 맹렬하고도 차분한 370여 키로의 라이딩을 시작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블레어님을 잃게 되었지만, 살아있는 긍정의힘, 스마일맨님을 팀원으로 포섭했기 때문에, 우리의 여정에 걱정은 없습니다.

전날까지 약간의 비소식이 있었지만 다행히 출발하는 우리에게 비는 내리지 않네요.

물론, 작년에도 출발할때는 날이 좋았었기 때문에 ‘아직은 모른다’ 라는 생각은 하고 출발했지만 그 어떤 비바람이 와도, 올해는 뚫고 가리라는 굳은 다짐을 하며 페달을 밟아나갑니다.

원주시내의 중심에서 출발하는 우리는, 원주를 빠져나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고 신호를 준수하며 수신호를 주고받고 최대한 안전히 원주를 빠져 나왔습니다. 
10년전 이맘때쯤.. 저는 이등병으로 원주에 자대 배치 받았었는데, 아찔한 그때의 기억이 스치웁니다. 괜히 엄마 보고싶어지네요.

원주를 빠져나와 양안치재를 포함한 업힐 3개를 넘어 90키로지점의 증평을 향해 달려나갔습니다, 업힐을 넘을때마다 블레어님의 꿍시렁꿍시렁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한데 옆에 계시질 않으니 영 허전하고 아쉬움이 큽니다 . 업힐 중간에 사진을 하나 보내 소식을 전하니 침대에 누워 비몽사몽한 사진으로 답을 주시네요... 일단 완주 후 서울에 돌아가 뵙기로 하고 우리는 페달을 밟아 나갑니다.

첫 번째 CP에 도착했을 때 이미 27~28도에 가까운 땡볕이 우리를 반겨주었던 것 같고 제가 생때를 쓰다싶이 하여 불나방의 점심식사는 근처의 냉면집에서 먹습니다. ‘일방적으로 메뉴를 우겨서 죄송합니다!’ 라곤 했지만 아몰랑 더워 무조건냉면 이라며 팀을 가까운 냉면집으로 그냥 막 끌고갔네요. 

저는 맛있었는데 팀원들은 맛있었나 모르겠습니다 T_T

그쯤에 체인오일이 말라 자전거에서 끼릭끼릭 소리가 나는데 냉면집 바로앞에 자전거포가 하나 있더군요, 올타쿠나 하고 가서 ‘저.. 서울서 자전거타러왔는데 체인오일 좀 빌려쓸수 있겠습니까’ 하니 주인장께서 흥쾌히 기름통을 내어주시네요. 식용유 같은 기름을 꿀럭꿀럭 발라주니 확실히 스무스해 집니다.

공주보를 향한 신나는 여정 앞에 뙤양볕과 역풍이 불어왔지만 리더이신 여봉선님의 지휘아래 완벽한 호흡의 로테이션으로 역풍을 돌파해 나갔습니다. 구름한점없이 맑은 하늘아래 로테이션을 돌며 신나게 달려 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너무너무 행복한 순간 이었습니다 . 정말 역풍에 피빠는건 너무나 꿀같아서 팀원의 등판 뒤에 숨어 있다가 살짝만 옆으로 삐져나와도 ‘으악!!!’ 스럽지만, 장거리 팀 라이딩에서 서로의 체력을 세이브 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과제이므로 서로가 서로에 등판을 빌려주며 나아갑니다.

문제는 ㅋ 빈스님 등판에 붙어서 잠깐만 달려보면 이 빨대를 뺄수가 없어집니다 ㅠㅠ 자당 최고의 윈드브레이커, 제가 붙어본 등판중에 진짜 최고로 달콤했습니다.. 이 빨대를 놓을수가 없엉 ㅠㅠ 여러분 다음에 빈스님 하고 타실때 우선 요금 선결재 하고 피 빠시기 바랍니다. 저희팀 주임원사님이시니까 저한테 입금해주셔도 되고요 계좌는 신한은행..읍읍..

아무튼

그렇게 공주보에 가는중에 스마일맨님이 예상밖의 더위에 거의 실신지경에 몰렸는데, 빈스님께서 긴급처방으로 이거저거 막 맥이시더니 부활시켜내시네요.. 그 어떤 상황에도 준비가 되어있으신 불나방 주임원사님 역시 최고십니다.

공주에 도착해 간단히 보급을 하고 우리는 논산으로 출발합니다.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라이딩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네요.

어두워는 앞길에 맞춰 전후미등을 켜고 서로를 비추며 그렇게 공도와 시골길을 해쳐 나갑니다. 움푹 패여진 길바닥과 방지턱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홀, 턱, 홀, 턱! 서로를 지키기 위해 수백번도 더 외친 것 같습니다.

다음 CP인 부안까지는 120여 키로가 넘기에, 우리는 자체적으로 논산에서 한번 익산에서 한번 휴식을 취하기로 합니다. 작년 불나방이 쉬어갔던 그 지점에서...

작년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비바람이 우리를 막아섰다면, 올해는 해가 지고 나니 정말이지 한치앞도 보이지 않을만큼 밤안개가 내려앉아왔습니다. 공도의 차량들은 쌍라이트와 비상등을 켜고 주행하기 시작했지만 그 사이사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과속주행에 크락션을 울려대는 차들이 있었으며 우리는 가능한 공도 옆의 시골길을 선택해 주행해 나아갑니다. 백미터 앞이 보이질 않는 야밤에 과속주행에 클락션을 울리는 차량을향해 외마디 욕설도 뱉어보지만, 생각해보면... 운전자 입장에서도 이 야밤에 왠 미친놈들이 자전거를 타고있냐.. 할 법 도 하네요. 

사실 조금은 미친 것 같기도 합니다.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에, 그리고 묵묵히 페달을 밟아나가는 이 여행에 말이죠. 

정말 안개가 심해 네명이서 둘 둘 붙어서 주행해 나갔습니다 빈스님과 제가 앞에서서 최대한 전방을 밝히고 바로 뒤에 여봉선님과 스마일맨님이 뒤를 밝히며.
소름이 끼칠만큼 아득한 밤,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작은 불빛조차 하나 없는 조용한 시골길.. 자꾸 다리를 건너는데 어딘가 강변인 것 같기도 하고... 전방에 뭔가 나타나 소리를 치니 폴짝폴짝 뛰어 사라지네요. 
문득 이 길위에 나 혼자였다 라면 하는 생각을 하니 등꼴이 오싹해 옆의 팀원들에게 말도 안되는 노래를 불러도 보고 농담도 건네면서 그렇게 주행을 이어갔습니다.

아마..... 여봉선님께서 ‘연애는 안하냐’ 고 물으신 것 도 이즈음 이었던 것 같네요 =_= 
대장님 빨리 소개팅 주선해 주셔야지.. 안그러면 만나는 사람마다 연애 언제하냐고 물어보게 생겼습니다 T_T

그렇게 우리는 280여 키로 지점인 부안CP에 도착했고 다음 CP는 305키로미터 지점인 정읍, 곧바로 내장산을 넘어 라스트 CP는 335키로 지점 즈음입니다.

플래시는 마지막 cp에서 오전 7시 전에 출발할 수 없는 룰이 있습니다. 하여 우리는 고민 끝에 부안cp에서 여유있게 쉬고, 내장산을 넘어 7시에 맞춰 마지막 씨피에 도착하게끔 달려 나가기로 합니다. 대낮의 30도에 육박하는 땡볕과는 정 반대로 해가 떨어지고부터 기온이 급감하여 10도 이하의 추위가 닥쳐왔기에, 마지막 씨피에 미리 가봐도 추위에 떨며 기다려야 할 거라는 생각에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따뜻한 라면을 먹고 그대로 기절하여 편의점에서 약 한시간 반?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페달을 밟아 나아갑니다.

305키로지점 정읍에 도착하니, 애초에 계획했던 CP인 편의점이 사라지고 없더군요, 다행히 바로 근처에 24시간 맥또날두가 우리를 반겨주어 그곳에서 급히 상황을 랜도너스 운영진에 전달하고 포토인증을 한 뒤 짧게 휴식을 취하기로 합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나누고 다시 내장산을 향해 나아갑니다.

마침내 내장산에 왔습니다. 
작년에 그 비바람을 뚫고 오기로 라도 왔으면 어땠을까, 넘었을까 못넘었을까, 과연 300키로를 넘게 달려와 캄캄한 내장산에 들어가면 어떤 기분일지, 가혹한 업힐이 되어 우리를 맞이할것인지, 오름직한 경사도로 지친 우리를 안아주듯 맞이할런지, 참 으로 궁금했던 그곳입니다.

내장산 국립공원은 지리산처럼 큰 산은 아닌 450여미터 획득고도의 코스지만 그래도 큰산은 큰 산입니다. 힘은 들었지만 각자의 페이스에 맞춰 슬슬 올라가다보니 결국 정상에 도착했네요.

우리가 내장산 정상에 도착해 기념사진을 찍을때는 플래시 없이 사진을 찍어도 서로의 얼굴과 내장산 단풍고개의 비석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산을 오르는 동안에 날이 꽤나 밝아져 왔던 것 같습니다.

지친 어둠이 다시 푸른 눈을 뜰 때, getting closer day by day..

그렇게 날짜가 넘어가는 라이딩에서 우리는 팀으로써, 서로를 지키며 달려온 자덕으로써, 조금더 끈끈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지쳐있었지만 어깨동무를 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고 파이팅을 외칠 수 있었거든요.

동이 트기전에 큰언덕을 향해 자전거와 내 몸을 밀어넣어보면.. 그 큰 산 속에 안겨 새들의 지져귐과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는 주변 산세를 통해 동이 터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 산을 내려올 때 쯤엔 서서히 떠오르는 붉은 햇님을 만나게 되는데요, 정말 나 자신의 작음과 숨이 머질듯한 자연의 경이로움에 그 모든 피로를 잊게되고 또 많은걸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힘을내어 마지막 CP에 도착하니 자당의 또다른 플래쉬팀인 팀클리앙 팀이 와 계시더군요,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고생했다 서로를 응원하고, 또 그순간 우리를 스쳐지나간 다른 플래시팀과도 란도너스 파이팅 광주에서 봅시다 하고 응원의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마지막CP를 공유하긴 했지만, 광주로 들어가는 길은 서로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조금 먼저 출발하여 광주를 향해 달려갔지만 광주에 거의 다다랐을 때 팀클리앙이 우리 앞에 가고계시더군요. 마지막까지 각자 팀의 페이스에 맞게 완주지점을 향해 달려갔고, 완주점을 앞둔 백여미터의 직선주로, 완주의 달콤함이 펌프질 해주는 아드레날린의 힘으로 앞팀의 스프린트에 맞춰 마지막 발사를 해 운암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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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우리는 250키로지점에서 비바람에 막혀 포기선언을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사실 저의 포기가 우리의 포기로 이어졌을 뿐이었기에,

나만 잘하면 된다 라는 생각으로 준비해온 1년이었습니다.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cm_bike&wr_id=703530

2016년, 팀 불나방의 일원으로 참가한 플래시에서 처참한 GG선언 후 그 좌절감을 바탕으로 300을 달리고 400 그리고 600까지 달려냈습니다만,

플래시를 복수하기 전에는 슈퍼랜도너도 뭣도 아니다 라는 마음으로 1년을 기다렸습니다

갑작스런 장경인대 부상으로 작년 후반기와 긴 겨울내내 재활에만 힘을써야 했지만 다행히 몸은 부족하나마 기한에 맞춰 얼추 준비가 되어줬고 달려낸 끝에 복수에 성공했습니다.

부족한 팀원의 페이스에 맞춰 팀을 끌어주신 리더 여봉선님과, 모든상황을 하나 놓침없이 다 대비해 팀원을 챙기신 빈스님, 과감히 불나방이되어 불속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하여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행복한 순간순간을 남겨준 스마일맨님, 종아리 부상으로 집에서 꿀잠을 주무신 블레어님, 

그리고 언제나 불나방을 응원해주시는 자전거당 여러분들과 란도너스 브레베를 달리는 모든 자덕분들에게 감사의 인사,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무거운 저를 태우고 잘 달려준 저의 빨간 자전거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남겨놓습니다.


작년의 DNF가 어쩌면 저로써는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기에, 
이번 플래시의 성공적인 피니쉬 또한, 어떤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일것이라 믿기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후기를 마무리 합니다.

길 위에서 뵙기를 기대하며 . Clien자전거당, Team Tiger Moth, 잠냥.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