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2023. 2. 14. 21:59

엄마와 키오스크.

본 글은 PGR21 자유게시판에 작성한 글로
많은 공감을 얻었기에 블로그에 백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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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환갑을 넘기셨지만 나와 여전히 가깝게 지내고 있고, 또 시간을 내서 엄마와 산책을 다니려고 하는 편이다.

가끔 정말로 귀찮아서 강아지 한마리 입양해 드릴까 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산책이라도 나가면,

여태 못하신 얘기들, 친구분들 얘기, 시시콜콜한데 듣고 있으면 어머니가 어떤 생각을 하시는구나 하고 알 수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되니까

어쩌면 같이 저녁식사 하는 것 보다,  한시간 걷는게 더 좋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러던 어느날 ,

"아들 엄마 햄버거 먹고싶은데"

"햄버거? 엄마가? 먹자  저기있네 "

피자 좋아하셔서 가끔 배달 시켜 드시기는 하지만, 햄버거를 드시고 싶다 그래서, 의아한 마음 반, 반가운 마음 반(내가 좋아하니까)  해서 같이 앞에 보이는 맥또날두에 들어갔는데

요즘 어딜가나 그렇듯 키오스크 4대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 이거 하는법 좀 알려줘 아들"

"아 이거 쉽지  엄마가 천천히 해봐 휴대폰하고 똑같애"

그렇게 어머니한테 해보시게 했더니

커다랗게 써있는 취소 버튼도 "어디있지..." 하고 화면을 한참을 훑어 보시고서는 이건가? 하고 조심스럽게 누르시는 모습이

젊은 사람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 어머니께는 너무나 적응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옆에서는 사람들이 빠르게 주문하고 빠져주는 모습에 괜히 자기 뒤를 돌아보시기도 하고..

"엄마 천천히 해도 괜찮아 이거 기계 옆에 많잖아 , 사람들 기다려 줘 괜찮으니까 천천히 한번 해봐봐"

라고 옆에서 기다리면서 가르쳐드리기를 한참

"치킨 들어간거랑 고기 들어간거랑 그림이 잘 보이지가 않네..  콜라는 어디서 골라야 해 "

엄마에게는 어쩌면 주문 순서조차도 너무나 생소하니까..

"쐉하이 스파이시버거"는 나에겐 당연히 치킨버거지만 엄마는 그림 보고는 잘 모를 수 도 있겠지 싶기도 하고..

"천천히 해봐" 하고 가르쳐주니 엄마는 두어번 해보시고는  본인 드실 치킨버거 하나, 내가먹을 페티 두개짜리 하나를 세트로 주문하는데 성공했다

내가볼땐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눈치지만

" 아 인제 됐다 " 하고는 물러서는 모습이 어째

왠지 나한테도 미얀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들한테도 미얀해서  급하게 일단 알았다고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여서

주문한 햄버거를 받아 와서 엄마에게

"아니 근데 갑자기 햄버거는 왜?" 라고 되물었는데


얼마전 친구분께서, 며칠동안 계속 노때리아 햄버거를 종류별로 바꿔가면서 사다 나르시기에

"야 왠 햄버거를 자꾸 사와" 하고 물으시니

그제서야 " 내가 그 .. 먹고싶은 햄버거가 하나 있는데.. 잘 모르고 사람들이 기다리니까 .. 자꾸 잘못사와서.."

라고 하셨다지 뭔가

그.. 젊은사람들 있으면 물어보시면 될텐데 싶기도 하고.. 그래도 우리엄마는 시도조차 못했을텐데 용감하시다 싶기도 하고

정말  햄버거 드시고 싶으셨나보다 하는 마음에



어찌나 화도 나고 마음도 아프고  복잡한 심정이던지

그 이후로는

산책을 나갈때면 하루는 아이스크림집 , 하루는 커피, 그다음은 다시 햄버거

이렇게 다니면서 키오스크 해보시라고 하고


둘이 나란히 하나씩 사먹게 되었다


이게 뭐라고 우리 엄마가 햄버거 하나 못 드셔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어쩌면, 세상이 우리 엄마가 적응하기엔 너무 빠르게 변하는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엄마는 내가 있으니까 다행이네 내가 엄마를 좀 더 챙겨야겠다는 마음도 생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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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떤 짤에선가

부모님이 아이를 키울때  아이가 "엄마 이거는 뭐야? 왜? 왜 ? 왜? " 끝도없이 "왜?" 를 해도 부모님은 한번도 불평 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자라서 , 엄마가 아들에게 "아들, 이건 어떻게해? " 라고 하자 아들이 엄마 그것도 몰라!! 하고 썽을 내는 짤에

많이 들 공감을 표했던 기억이 납니다


앞으로는 더 키오스크가 많아질텐데..

꼭, 부모님과 시간 내서 한번 같이 키오스크 주문 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엄마가 모를 수도 있잖아요